김경헌. 서인영의 과외 선생님. 85년생. 이 친구 참 매력적이다.
미니홈피의 제목이 <Pride and Prejudice> 인 것과 다음의 글들에서 유추해 볼때..
영어 커뮤니케이션의 서인영의 기말발표 주제 선정은 이 친구의 작품이다..
총 12회의 분량의 짧지 않은 에피소드의 연결들로 자짓 산만한 분위기로 끝날 수 있었는데..
<오만과 편견> 이라는 영어 기말발표는 이 프로그램의 취지를 정확하게 살리면서..
막방을 의미있게 만들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장본인이 김경헌씨 이다.
프로그램의 연출자도 작가도 할 수 없는 것을 과외 선생님이 만든 거다..
다시 말해 서인영의 크루 중에서..
임두혁 군이 서인영을 연예인에서 보통의 카이스트생으로 다가가게 만들었다면..
김경헌 씨는 세상이 가지고 있는 서인영의 편견을 깨주었다..
Experience is what we get when we don't get what we wanted.
(경험이란,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했을 때 얻는 것이다.)
- Randy Pausch
이런 멋진 말을 서인영에게 해 줄 수 있는 그는 진정한 멘토였던 것이며..
그가 리얼리티 쇼를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닌 리얼리티(현실)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제목 :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
글쓴이 : kaybono 등록일:2008-03-25 추천수:89
[필수입력사항]
* 학교 : KAIST
* 전공 : 생명화학공학
* 나이 : 1985년생
1회 잘 봤습니다.
엔터테인먼트가 우선적 요건인 Mnet의 방송인 것을 잘 압니다.
Reality Show의 가면을 쓴 단순한 오락 프로그램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지, 라고 받아들이게 되는게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첫 회에서 보인 서인영 씨의 눈물마저 거짓이라면, 더 이상 할 말은 없겠죠.
하지만,
단순히 서인영이 명문대에서 좌충우돌 에피소드 만들어내다가 웃음주고 망신당하고 끝나버리는
이런 것 이상의 무엇인가를 프로그램에 담을 수 있게 되기를 조금이나마 소망해 봅니다.
학교의 많은 학생들이 얘기합니다.
KAIST망신이라고,
힘들게 입학한 KAIST 생들에게 대한 모욕이라고,
서인영이 KAIST를 위해 뭘 할 수 있겠냐고, 마이너스 홍보라고,
다 맞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생각을 뒤집어, KAIST가 서인영씨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고민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아이돌 가수로서의 삶을 살아온 한 사람에게,
대학이라는 곳에서의 짧은 기간이 어떤 터닝 포인트가 되어줄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점검해 볼 수 있다면,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전공 서적 한 페이지 더 외우는 것이 대학 생활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자신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꿈과 비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젊은 대학생들의 특권이고,
그에 대해 조금이나마 귀를 기울이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면,
그래서 서인영의 카이스트가 대중을 웃기는 프로그램이기 이전에
서인영이라는 사람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면,
시청자들 역시 동감 가운데 함께 웃고 생각해나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거란
주제넘은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을 줄 압니다.
프로그램이 원하는 과외선생님이란 것도,
단지 몇 번의 에피소드를 추가할 수 있는 소재거리에 불구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짧은 시간 속 작은 생각의 공유를 통해
변할 수 있고 깨닫게 되는 것이 사람이고 멘토링의 시작인 것을 알기에 작은 기대를 걸어봅니다.
대전까지 내려와 촬영하느라 고생하시는 스텝분들께 누가 되는 글이 아니었기를 바라며,
아무쪼록 프로그램 잘 마무리하시기를 바랍니다.
2008.05.30 03:00 지금은
서인영의 카이스트의 막방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촬영은 전부 끝난 상태, 스탭들도 편집만을 남겨둔 채 한결 홀가분한 모습이다.
복학 후 두 번째 학기, 시작은 굉장히 지루했다.
수업 다녀와서 복습하고 예습하고, 특별한 일 없이 그저 열심히 공부를 해 가며 또 하나의 학기를 생각없이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중간고사도 굉장히 잘 봤고,, 모든 게 지루했지만 순조로웠다. 그들이 오기 전 까지는,,,
인영누나 (당시엔 서인영 씨)가 학교에 온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다. 뭐 그냥 그런가보다, 생각했고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무슨 수업을 듣네, 근데 왜 얼굴은 안 보이냐 등등의 이야기들을 하곤 했지만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었다.
그렇게 1회 방송이 나갔고, Mnet 홈페이지에서 다시 보기로 방송을 봤다. 재밌었다. 서인영이란 사람이 좌충우돌 학교에서 적응하는 모습이. 게다가 우리 학교란 생각에 더 친근감도 있었고.
그러던 중 홈페이지에서 과외선생님 모집 게시판을 봤다. 첫 눈에 '시청자 참여 유도용'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짜피 "꽃미남 수재 과외 선생'이란 거 다 섭외되어 있는 거고, 호기심 끌기 위해 만든 게시판이겠거니,,
그런데 어느 새 거기에 글을 올리고 있었다. 과학도서관에서 공부하면서 날 가득채운 지루함이 날 부추기고 있었나보다.
그 이후 아무 생각없이 또 시간이 흘렀다. 한 통의 문자가 오기 전까지. 지혜(그 당시엔 막내 작가님)의 문자였다. 과외 선생님 신청 메일로 다시 해달라고, 그리고 그 다음 주(중간 고사 보는 주)에 면접이 있다고-_-;;
그렇게 해서 그들을 처음 만났다. 후덕한 인상의 용범이 형 (그 당시 담당 pd님)과 작가 트리오, 연출 트리오, 카메라 감독님과 음향팀,,,
첫 만남은 썩 좋지 않았다. 중간 고사 기간인데 1시간 반을 넘게 기다렸다. 난 불이나게 답안을 쓰고 일찍 나왔는데 말이지. 이거 뭥미 싶었다. 뒤늦게 인영누나가 오고 시작된 촬영.
카메라엔 의외로 쉽게 적응했다. (괜시리 프레전스가 떠오르며 영상팀이 고마워진다는,,ㅋ) 물론 몰카엔 완전히 당했지만, 결국 과외 선생님으로 선발 되었고, 다음 주에 연락 주겠다며 그들은 나를 남겨 두고 다음 촬영지로 향했다.
그렇게 그들과 함께하는 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월, 화 이틀동안 그들은 학교에 상주했고, 우리와 시간을 공유해 갔다.
첫 과외, 인영 누나 집에서의 크루 모임, 이어진 과외와 중간고사 시험, 축제, MT, 두혁이 생일 파티, 기말 고사까지,,
어느 샌가 부담스러웠던 4대의 카메라는 없으면 허전한 친구들이 되었고, 스탭들은 안쓰러운 모습을 통해 시종일관 내 걱정을 유발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며, 인영누나는 툭하면 전화하는 옆집 누나가 되어 있었다.
평범했던 학기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월,화 촬영, 목요일 방송, 사이사이 검색병(크루들이 함께 걸려버린)과 싸이관리,,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고 어느 새 학기의 마지막 주가 끝나가고 있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평범한 일상 속에서 늘 새로운 경험을 찾아나서는 삶이었다. 지루함을 참지 못했고, 늘 탈출구를 찾아 도전했다.
이 번 도전은 조금 더 특별했다.
삶에 녹아들었기에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인영 누나도,
스탭들도,
처음 만나 친해진 크루 녀석들도
친구가 되었고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다음 주가 지나면 방학이고, 방학이 지나면 마지막 학기가 찾아올거다.
인영 누나야 서울서 가끔 볼 수 있을 꺼고,
크루 녀석들이야 학교에서 볼테고(두혁이 군대가지만 카투사니깐뭐;;),
스탭들을 못 보는게 젤 아쉬울 것 같다. 후덕한 용범이형, 악마 준영이형, 시비조 혜란누나, 뺀질이 영교, 두목 나영누나, 책임감 지나누나, 다크서클 지혜,,, 보고 싶을 때 Mnet 사옥으로 쳐들어가지뭐-ㅋㅋㅋ
다음 학기에 학교에 있으면서 찾아올 허전함과,
뭔가 또 다른 걸 찾아 정신없이 도전하고 있을 내 모습,
내일 보는 시험에 대한 걱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장문의 일기는 쓰는 여유로움,
공부하기 싫다 젠장ㅋㅋㅋㅋ
p.s. 왠지 이번학기 성적과 이 방송을 맞바꾼 기분
(이건 어느 도전 때나 마찬가지였지만ㅋㅋ)
서인영의 카이스트 마지막회에서 서인영이 영어 커뮤니케이션 기말발표 주제다. 주제 선정부터 다른 사람 도움을 받았겠지만, 그녀에게 이보다 더 적절한 발표 주제는 없었다. 부족한 영어발표 능력은 인터뷰를 담은 비디오 클립으로 대체하고, 적절한 음악과 편집으로 그 능력을 배가 시켰다.
사람들은 오만하다. 그리고 그 오만은 대개 편견이 된다. 오만과 편견은 다른 것이 아니라.. 종이 한 장의 차이다. 누군가에게 고정관념이 있는가? 당신은 오만한 것이다.
서인영에 대한 내 개인적인 편견은 깨졌다. 사람들의 KAIST에 대한 인식 역시 변화 되었다. 편견을 깨는 이런 자극은 언제나 유쾌한 경험인 것 같다.
어학센터에서 영어회화 선생님과 같이 얘기를 하던 중에.. 갑자기 한미 FTA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에게 물었다..
기본적으로 정부는 자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최소한 장벽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나는 한미 FTA 협상 타결에 대해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했는데..
미국 태생의 영어 선생님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한미 FTA는 한국에 좋은 영향을 줄꺼라고 믿는다라고 했다.. 바로 반박할 몇 가지가 생각나기는 했지만, 소득의 불균형, 경기 동조화 현상 등에 대한 어휘 부족으로 계속 말을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2008년 5월.
현재도 역시 나는 한미 FTA 협상을 반대한다. 정확하게는 이렇게 굴욕적인 한미 FTA 협상의 국회 비준을 반대한다. 영화, 농업, 금융 등등 우리 산업을 보호하면서 수출할 때는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는 한미 FTA 협상이라면 찬성하겠지만.. 미국의 소고기를 수입하면서까지 한미 FTA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규멘터리 FAT 12년. 맥시코의 명과 암(KBS 스페셜, 2006년 6월 5일 방영)을 보고 있으니, 우리나라가 타산지석을 삼아야 될 것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혹시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꼭 구해서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