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pomp.tistory.com/887

박부성 교수님의 삼각뿔 공식의 proof without words를 보니까, 나 역시 어릴 때 이에 대해 생각했던게 떠올랐다. 컨셉은 비슷한 것 같은데 좀 다르기도 한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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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가득합니다. 주의 요망.)

드라마 [나인 : 아홉 번의 시간여행]이 재밌다고 해서, 정주행 마쳤는데.. 마지막 씬이 재밌는 듯.. 58세로 추정되는 선우가 히말라야의 정우를 찾아가는 장면인데.. 내가 내린 해석은 다음과 같다.

  1. 편의상 2012-2013년의 시대를 A시대, 1992-1993년의 시대를 B시대로 하자.
  2. A시대와 B시대는 20년의 시간차를 두고 동시에 시간이 흘러가는 이야기로서, B시대의 특정 시점에서 무언가 변화하면, 20년 뒤 A시대에서 그 변화가 적용된다.
  3. 예를 들어, A시대의 선우가 B시대 1992년 12월 30일 저녁 10시에 이미 약봉지를 (의도하지 않게) 약봉지를 남겨 놓고 왔지만, 친구 영훈이가 약봉지를 발견하는 B시대의 1993년 1월 1일 0시, 즉 A시대 2013년 1월 1일 0시가 되어서야 선우가 살아난다. 이 때, A시대의 1993년 1월 1일 0시 부터 2013년 1월 1일 0시 까지의 모든 기억과 기록이 변경이 된다.
  4. B시대의 선우가 기타에 글씨를 쓰거나 지우면, 20년 뒤의 A시대의 선우가 표시되거나 지워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5. B시대 1993년 4월 24일 11시 59분. B시대 정우가 결혼식을 포기하고 자수하기로 결심함 -> A시대 2013년 4월 24일 11시 59분. A시대 거의 모든 설정이 변화함. 선우 차에는 결혼식 반지가 생기고, 선우와 민영이는 결혼식을 열고, 정우는 봉사활동 중이고.. 등등..
  6. B시대 1993년 4월 24일 정오. A시대의 선우가 B시대에 갇힘. -> A시대 2013년 4월 24일 정오. A시대에서는 선우가 사라짐. 향 받침대와 향 보관함도 사라짐.
  7. B시대 1993년 4월 24일 12시 30분. B시대의 최회장에 의해 A시대의 선우가 죽음. -> A시대 2013년 4월 24일 12시 30분. A시대의 최회장이 A시대 선우를 20년 전에 자신이 죽였음을 기억함.
  8. B시대 1993년 4월 24일 20시. B시대의 민영에게 A시대 선우가 유언을 남김. -> A시대 2013년 4월 24일 20시. A시대의 민영이가 A시대 선우의 유언을 기억함.
  9. B시대 1993년 5월 10일. A시대의 선우가 B시대의 선우에게 남긴 메세지에 의해, B시대 선우는 A시대의 선우에 의해 영향받은 어떤 것들에 대해서도 의지를 가지지 않고 잊고 살기로 결심. -> A시대 2013년 5월 10일. 이 시점 이후부터는 A시대는 과거나 기억이 변화하는 일이 생기지 않음.
  10. B시대 2012년 12월 4일. A시대의 선우가 B시대 1993년에 죽는 것을 알게 되고, 변화의지를 갖게 됨. -> (추정) A시대 2032년 12월 4일. B시대에 가서 죽었던 A시대의 선우가 58세로 살아남.
  11. (추정) B시대 2012년 12월 5일 이후 어느 날. B시대 정우는 네팔에 의료봉사에 갔다가 (과거의 향과는 다른) 향을 구했고, 히말라야에 오르다 죽는다. B시대 선우는 얼마 후 정우의 시신을 수습하고, 정우의 향을 얻음. 1993년도 이미 향의 존재를 알았던 B시대 선우는 이것이 A시대 선우의 물건임을 알기에 사용하지 않고 보관함 -> A시대 2032년 12월 4일 살아난 선우는 정우의 죽음을 포함한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B시대에서 선우가 보관해 놓은 향을 찾음.
  12. (마지막 씬) B시대 2012년 12월 5일 이후 정우가 히말라야에 오른 어느 날에 맞추어, A시대 2032년 12월 5일 이후의 선우는 정우를 구하러 향을 이용하여 B시대로 가서, 정우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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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현재도 iWork '09 를 Family Pack 으로 판매하고 있고, 한 때는 MacBook Air 주문시 돈은 더 내면 iWork '09 를 Pre-installed 해서 판매하기도 했다. 그런데, 초기 판매한 iWork '09 9.X 버전은 몇 가지 호환성 문제로 현재 Lion 에서 설치가 되지 않는다. 즉, 작년에 봄에 구입한 Snow Leopard 가 설치된 맥북에어에 iWork 를 설치를 하고 Lion 으로 업그레이드를 하면 문제가 없이 잘 작동을 하지만, 같은 맥북에어에 Lion 을 클린 설치 하고 나면, iWork 를 설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보면, 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많은데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직접 패키지들을 풀어서 일일이 비교분석(!) 하는 노가다를 통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메뉴얼로 남겨본다.

  1. iWork '09 30일 체험판을 다운 받아 설치를 한다. http://www.apple.com/kr/iwork/download-trial/
  2. iWork '09 Retail CD 안의 패키지의 압축을 풀어서, 다음과 같은 2개의 파일을 찾는다.
  3. 다음 경로의 파일들을 이 두개의 파일들로 대체한다.
    • /Library/Application Support/iWork '09/Frameworks/SFLicense.framework/Versions/A
      /Resources/button-pushbutton.tif
    • /Library/Preferences/com.apple.iWork09.Installer.plist
  4. 이제 실행시켜 보면, 체험판 메세지도 안 나오고, 등록 화면도 잘 나오는 것을 확인한다.

이 작업 후에도 Lion 에서 iWork 에 관한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역시 문제없이 잘 된다.

주의: 이 메뉴얼은 정품을 구매한 사람만 실행하길 바란다. 이 방법대로 정품 없이도 iWork '09 를 설치할 수 있지만, 이 글은 당신의 라이센스 위반에 관하여는 책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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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1. 05:00

한미 FTA 반대

Thoughts

한국 국회가 시끄럽다. 미국이 재협상을 통해서 미국에게 유리하게 고친 한미 FTA를 미 의회가 비준을 했고, 그에 따라 한국 의회에서도 비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2008/05/04 - [Thoughts] - 한미 FTA 타결 그리고 그 후..

2008/05/27 - [Thoughts] - 한미 FTA..

나는 예전 글에서도 말했지만, 한미 FTA 반대했고, 지금도 반대한다. 나는 FTA 무용론자는 아니다. 적절한 협상을 통해 무역의 양을 늘려 무역 대상국간의 이득을 다른 나라에 비해 늘릴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이것의 전제는 공평한 협정 체결이다.

그런데 한미 FTA 타결이 되었을 때, 그리고 미 의회의 비준을 얻어내기 위해서 스크린 쿼터, 자동차, 소고기 등등 굴욕적인 재협상을 하는 외교통상부 공무원들을 보고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많이 내주고 나면 어차피 우리나라 국회가 바보가 아니고서는 이런 협정에 서명하지는 않을꺼라 생각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근데, 문제는 임기기가 6개월도 남지 않은 국회의원들이 바보라는 거다. 정확히는 국가의 미래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고, 이런 한미 FTA 조약을 비준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다수라는 것이다.

미국은 자신의 유리한 위치를 만들기 위해 의회가 4년 반을 끌었다. 우리나라는 4년 반을 끌 수 없나? 이거 안 하면 당장 우리나라가 망하는 건가? 오히려 이걸 성급하게 비준해서 망하지는 않을지 걱정하지는 않는건가?

4년 반이 아니라 10년 쯤 걸쳐서 검토해 보고, 보수와 진보 그리고 국민 모두가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조약이 되었을 때 서명하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뒤쳐지는 것도 아닌데.. 정말 왜 이러는 건지?

고종황제가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을 체결하자 <시일야 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사설로서 이 을사조약의 의미가 사실 우리나라 망했다라는 것을 모르던 백성들에게 알리는 글이었다. 한미 FTA 가 비준되어 체결되기 전에 2011년 우리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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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잠결에 페이스북을 따라가다 그의 사망소식을 접했습니다. iPhone 4S 출시 발표한 어제보다 더 큰 뉴스로 그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넘치는 군요.

제가 잡스에 대해 가장 인상적으로 느끼고 기억하던 때는. 2005년 청바지 작은 포켓에서 iPod Nano 를 꺼내서 소개할 때 입니다. 제품 발표도 그리고 그 제품도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이지 iPod Nano 를 질러야 한다고 지름신이 무척 많이 왔다가 갔습니다. 하지만 음악은 많이 듣지만, 이동하면서 듣지 않는 저의 생활 때문에, 그 때의 지름신은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많은 애플의 제품을 접하고 지름신이 유혹을 해왔지만, 5년을 버티고 나서, 저의 첫 애플 제품은 2010년 출시된 iPad 가 되었습니다. iPad를 2010년 1월에 스티브잡스가 아이패드에 대한 소개를 할 때를 기억해 보면, 정말이지 제가 어린시절 꿈꾸며 가지고 싶던 바로 그 제품을 손에 들고 있더군요. iPod Nano 때와 같은 충격의 몇 배를 느끼면서,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리어, 이건 무조건 사야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프랑스에서 출시하는 그 전날 미리 예약을 하고, 출시 당일 그 매장의 첫번째 고객으로 구입을 했습니다. 그 날의 흥분은 정말이지 아이로 되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1년 뒤 2011년 3월 윈도우 노트북이 고장나고, 바로 맥북에어를 구입하고, 저는 2개의 애플 제품을 가지게 됩니다. 이 제품 역시 스타일리쉬해서, 세련된 하드웨어와 그 하드웨어를 움직이는 OS X 를 느껴보니, 역시 명불허전입니다.

이런 멋진 느낌으로 점점 애플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가 오늘 아침 떠났습니다. 최근 10년간 인류에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위대한 사람 하나가 떠났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의 "One more thing!" 을 들을 수 없습니다. 허전함과 그리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아침이었습니다. 이제 그를 놓아주어야 하나 봅니다. 그도 이제 편히 쉬길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그의 말 중 하나를 떠 올리며 추모 해야겠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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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 시장 - 다섯살 훈이라는 별명을 좋아하는 - 의 고집으로 무상급식에 관한 투표가 진행되었다. 나는 인천에 거주지를 두고 있어서, 이번 투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이번 정책에 관하여 내 생각을 정리해 보고 싶어 이 글을 남겨 본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은 투표 당일 오전이지만, 혹시나 모를 선거법에 위반 될 소지가 있어서 투표 종료 시간인 저녁 8시에 공개되도록 작성하고 있다.)

정부의 급식 지원의 핵심은 우리 사회에 굶는 학생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볼 때 나는 개인적으로는 정부가 가정별 소득 수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급식에 지원하는 것에 동의를 한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왕 단계적으로 접근할 것이면, 더욱 등급을 더욱 세분화해서 섬세하게 단계를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딱 50% 로 짜르는 건 상위 49%에 있는 사람에게 박탈감을 더욱 줄 뿐이다. 한 10단계정도 나누면 좋을 것 같은데, 이럴경우에는 또 다른 사회비용이 들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단계적으로 지원하는 급식에 찬성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전면적으로 모든 학생에게 무상으로 급식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이 또한 위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에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학생에게 무상급식을 하는 정책이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는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것에 동의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낙인감 방지법]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우리사회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 의식이 있다면, 오히려 전면적 무상급식을 하는 것으로 인해 드는 추가 비용은 사회를 융합할 수 있는 비용으로 생각할 수 있고, 그에 비추어 볼 때 큰 비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내가 만약 서울시민 이었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나는 투표장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둘 다 어는 것이든 상관없는데 굳이 참여하여 결정할 필요가 없다. 더욱이 주민투표를 발의한 서울시장의 행동을 볼 때, 오히려 급식에 관한 서울시장의 생각에 진정성이 의심되어 그 반대쪽에 서고 싶다. [한강 르네상스]와 [디자인 서울]과 같은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사업에는 거침없이 집행을 하면서 불과(?) 연간 몇백억에서 천억원 정도의 돈이 드는 아이들 급식 지원에 '망국적'인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사회의 약자들 - 아이, 노인, 장애인, 여성, 노동자, 외국인 - 에 대한 지원의 확대를 가지고 나라가 망한다고 호들갑을 떨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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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용을 이용하여 학교를 방문하는 방법은 네비게이션 찍고 오시면 되는 일이라 어렵지 않습니다. 이 글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처음으로 학교를 방문하는 분들을 위해 작성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주안역 (1호선)
    • 마을 버스 511번 / 인하대학교 후문 / 15분 소요
    • 시내 버스 5-1번 / 인하대학교 정문 / 15분 소요
    • 학교 셔틀버스 / 인하대학교 정문 / 15분 소요 / 학교 셔틀버스 시간표
    • 주안역 남광장에서 탑승
  • 석수역 (1호선)
    • 광역버스 3001번 / 인하대학교 정문 도착 / 30분 소요
    • 석수역 1번 출구 (동편)으로 나와 탑승
    • 서울에서 오시는 경우, 주안역을 이용하시는 것과 석수역을 이용하시는 것의 시간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 수원에서 오시는 경우, 석수역에서 내려 무조건 광역버스 3001번을 이용하시길 바랍니다.
  • 강남역, 교대역, 서초역 (2호선)
    • 광역버스 9200번 / 인하대학교 정문 도착 / 50-60분 소요
    • 서초역 1번 출구 / 교대역 2번과 5번 출구 사이 / 강남역 3번 출구로 나와 탑승
    • 강남지역에서는 무조건 광역버스 9200번을 이용하시길 바랍니다. 지하철을 이용하여 오는 것보다 30분 가량 시간이 단축됩니다.
    • 9200번 버스는 서초역 -> 교대역 -> 강남역 -> 양재역 -> 선바위역 으로 진행을 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붐비는 시간에는 가급적 강남역 보다는 서초역, 교대역에서 탑승하실 권합니다.
  • 양재역 (3호선)
    • 광역버스 9200번 / 인하대학교 정문 도착 / 50분 소요
    • 양재역 7번 출구로 나와 200m 걸어서 탑승
    • 사람이 붐비는 저녁 시간에는 자리가 없어서 서서 와야 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 선바위역 (4호선)
    • 광역버스 9200번 / 인하대학교 정문 도착 / 40분 소요
    • 선바위역 2번과 3번 출구 사이로 나와 탑승
    • 사람이 붐비는 저녁 시간에는 자리가 없어서 서서 와야 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 인천종합버스터미널
    • 27번 / 인하대학교 후문 도착 / 30분 소요
    • 111-2번 / 인하대학교 정문 도착 / 30분 소요
    • 인천종합버스터미널에서 신세계백화점을 가로질러 나와 길거너 탑승
  • KTX 광명역
    • 광역버스 3001번 / 인하대학교 정문 도착 / 40분 소요
    • 타는 곳은 광명역 동편으로 나와서 7번 승차장에서 탑승
    • 중부, 남부 지방에서 KTX를 이용하시는 분은 무조건 KTX 광명역에서 하차 하시길 바랍니다. 서울역 혹은 용산역을 이용하시는 것보다 50-60분 가량 시간이 단축됩니다.

많은 건물들이 후문쪽에 조금 더 많이 몰려있습니다. 정문과 후문은 걸어서 5분 거리이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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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9일 24:00를 기준으로 블로그 주소를 http://hshin.info 에서

http://hshin.everhappy.net

으로 변경을 합니다. 그리고 http://hshin.info 는 제 개인 프로필 페이지로 변경할 예정입니다.

직접 블로그를 찾아 오시는 분이들 뿐 아니라, RSS를 이용하시는 분들이나, 모두들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2011년 5월 20일 수정.

블로그 주소가 너무 어색해서 위의 주소는 링크로 돌리고, 메인 도메인을 다음으로 변경합니다.

http://blog.hshin.info

http://hshin.everhappy.net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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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4. 11. 21:26

원의 넓이?

Thoughts/Math

반지름이 1인 원의 넓이가 \pi 라는 사실은 초등학교 때 이미 배워서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원의 넓이에 대한 증명을 엄밀하게 배우는 것은 고등학교 미적분학 때이다. 그럼 [반지름이 1인 원의 넓이가 \pi ]라는 것을 증명해 보자.

반지름이 1인 원의 방정식 x^2+y^2=1 을 이용하여 일사분면의 넓이를 적분으로 계산한 후에 4배를 해 주면 된다.

S=4\int_0^1 \sqrt{1-x^2} dx

여기서 우리는 x= \cos u 로 치환하여 계산을 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S=4\int_{\pi/2}^{0} (- \sin^2 u) du = 4 \int_{o}^{\pi/2} \left( \frac{1}{2} - \frac{\cos 2u}{2} \right) du =4 \left[ \frac{u}{2} -\frac{\sin 2u}{4}\right]_0^{\pi/2} = 4 \cdot \frac{\pi}{4} = \pi

이 증명에서 우리는 \int \cos u du = \sin u +C 라는 사실을 이용했다. 이것은 미적분학의 기본정리에 의해 \frac{d}{du} \sin u = \cos u 로 부터 유도된다. 이 식은 어떻게 증명했을까?

미분의 정의에 의해서 다음과 같이 증명했다.

\frac{d}{du} \sin u = \lim_{h\to 0}\frac{\sin (u+h) - \sin u}{h} = \lim_{h\to 0} \frac{\sin u (\cos h -1) + \cos u \sin h }{h}

여기서 \lim_{h\to 0} \frac{\cos h -1}{h} = 0 이고 \lim_{h\to 0} \frac{\sin h }{h}=1 을 이용해서 위의 극한값이 \cos u 이 됨을 보였다.

그럼 마지막에 이용한 극한값인

\lim_{h\to 0} \frac{\sin h }{h}=1

은 어떻게 증명을 할까? 다음과 같은 그림을 하나 생각을 한다.

여기서 원의 반지름은 1이고, 중심각을 x 라 하자. 삼각형 OBC, 부채꼴 OBC, 그리고 삼각형 OBT 의 넓이가 각각 \frac{1}{2}\sin x, \frac{1}{2}x, \frac{1}{2}\tan x 가 되고, 그것은 다음과 같은 부등식을 만족한다.

\frac{1}{2}\sin x \leq \frac{1}{2}x \leq \frac{1}{2}\tan x

이것을 이용해서 식 변형 하여서

\cos x \leq \frac{\sin x}{x} \leq 1

임을 보이고, 샌드위치 정리에 의해 \lim_{x\to 0} \frac{\sin x }{x}=1 보인다.

이 증명에서 우리는 부채꼴 OBC 의 넓이를 어떻게 구했을까? 그것은 반지름이 1인 원의 넓이가 \pi 라는 사실을 이용해서, 중심각의 비율인 \frac{x}{2\pi} 를 곱해서 얻었다.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부채꼴의 넓이를 구할 때 사용한 [반지름이 1인 원의 넓이가 \pi]라는 사실은 어떻게 구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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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정리를 한 참 쓰고 보니, 블로그에 인천으로 이사한 소식을 전하지 않았군요.

제가 2011년 3월부터 인하대학교 수학통계학부 수학전공 조교수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거처도 포항에서 인천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집은 인하대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아파트인 장미아파트에 구했습니다. 집에서 오피스까지 1km 도 되지 않아 걸어다니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빠르시간내에 미니벨로를 하나 장만하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합니다.

개강하지도 3주째라 이제 좀 모든 것이 정리되고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이제 포항가서 저 찾으시면 곤랍니다. 저를 만나고 싶으시면 인천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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